영화 아수라 비평: 출구 없는 지옥도에서 벌어지는 악인들의 처절한 생존 게임
2016년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는 한국 느와르 영화의 문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전무하며, 오로지 악과 더 큰 악이 충돌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격하게 합니다. 개봉 당시에는 지나치게 잔혹하고 불친절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비굴함을 가장 예리하게 포착한 마스터피스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본 평론에서는 영화가 구축한 '안남시'라는 공간의 상징성과 인물들의 파멸 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안남시(安南市): 부패와 폭력이 일상이 된 가상의 지옥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안남시'는 단순한 지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곳은 재개발 이권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 공권력의 타락, 그리고 하층민의 절망이 뒤섞인 거대한 시궁창으로 묘사됩니다. 김성수 감독은 의도적으로 화면의 채도를 낮추고 습기를 머금은 듯한 질감을 강조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안남시라는 공간이 주는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안남시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들을 극대화하여 투영한 거울입니다. 시장 박성배(황정민 분)를 필두로 한 지배 계층은 법망을 비웃으며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그 밑바닥에서는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이 폐쇄적이고 부조리한 공간 설정은 영화 제목인 '아수라(Asura)'—싸움만 일삼는 귀신들이 사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하며, 인물들이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2. 한도경과 박성배: 절대 악 앞에 무릎 꿇은 인간의 비굴함
정우성이 연기한 한도경은 느와르 장르에서 보기 드문 '비겁한 주인공'입니다. 그는 악덕 시장 박성배의 뒷일을 처리하며 기생하는 비리 형사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양심을 저버립니다. 한도경이 보여주는 신경질적인 불안과 자학적인 태도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거대한 권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실존을 대변합니다.
반면 박성배는 선거와 대의명분이라는 가면을 쓴 채 서슴없이 살인을 교사하는 절대 악의 화신입니다. 그는 공포와 자본을 적절히 섞어 사람들을 조종하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가치도 희생시킵니다. "이겨야 정의지, 지면 범죄자야"라는 그의 대사는 도덕성이 상실된 권력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상생'이 아닌 '지배와 굴종'이며, 영화는 이 수직적 관계가 파열음을 일으키며 무너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3. 카체이싱과 장례식장: 폭발하는 광기의 미장센
<아수라>의 액션은 미학적 아름다움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특히 빗속에서 벌어지는 한도경의 카체이싱 장면은 인물의 뒤틀린 심리 상태를 대변하듯 위태롭고 파괴적입니다. 핸들을 잡고 미친 듯이 웃으며 돌진하는 한도경의 모습은 이 영화가 지향하는 광기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례식장 학살 씬은 한국 느와르 역사상 가장 잔혹하면서도 강렬한 시퀀스 중 하나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공간인 장례식장에서 산 자들이 서로를 도륙하는 아이러니는, 안남시라는 지옥에 어울리는 유일한 결말입니다. 피로 흥건한 바닥에서 마지막까지 서로를 저주하며 죽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장르적 쾌감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허무와 공포를 자아냅니다. 감독은 이 아비규환의 현장을 건조하게 담아냄으로써 악의 끝은 결국 공멸임을 증명합니다.
4. 독창적 비평: '아수라'는 왜 불쾌한 걸작인가?
필자는 <아수라>를 향한 호불호의 갈림이 곧 이 영화의 성취라고 판단합니다. 많은 느와르 영화들이 악당의 삶을 미화하거나 비장한 죽음을 선사하여 대리 만족을 주지만, <아수라>는 관객에게 단 한 줌의 희망이나 연민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열하며, 그들이 맞이하는 파멸 역시 구차하고 지저분합니다.
필자는 이러한 '불쾌함'이야말로 우리가 직시하기 싫어하는 현실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권력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인간, 정의라는 명분 아래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검찰,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개인들까지. <아수라>는 '멋진 조폭 영화'를 기대한 관객의 뺨을 때리며,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지 일깨워줍니다. 악인들이 서로를 파먹으며 소멸해 가는 결말은, 역설적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렬한 반어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지독한 냉소야말로 <아수라>가 시대를 앞서간 걸작인 이유입니다.
5. 결론: 지옥의 끝에서 마주한 서늘한 진실
영화 <아수라>는 김성수 감독의 집념과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빚어낸 광기의 앙상블입니다. 낭만이 제거된 자리에 들어앉은 지독한 사실주의와 폭력의 미학은, 한국 느와르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심연을 탐험하게 합니다.
영화는 "물지 않으면 물린다"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안남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부조리한 생존 경쟁을 풍자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 남은 것은 차가운 빗줄기와 허망한 죽음뿐이지만, 그 서늘한 여운은 그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보다 강렬하게 관객의 가슴에 남습니다. 느와르 평론 10부작의 마침표를 찍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지옥도'는 없을 것입니다. <아수라>는 한국 영화가 보여준 가장 용기 있는 실패이자, 가장 독보적인 성취입니다.